향수", 18년 만에 다시 맡은 광기의 냄새

@넷플릭스영화 항수








"향수", 18년 만에 다시 맡은 광기의 냄새
Written by 사라 | 2025년 5월
주말 저녁, 무심코 켠 넷플릭스에서 반가운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어릴 적 충격과 감탄이 뒤섞인 기억을 남긴 그 작품이다. 어느새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그 광기와 집착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그것은 ‘냄새’라는 보이지 않는 감각을 통해 인간의 본질과 욕망을 탐구하는 실험적이고도 시적인 여정이다. 그르누이라는 괴물 같은 주인공을 따라가며, 우리는 ‘향기’라는 감각이 얼마나 인간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르누이, 후각의 괴물로 태어난 사내
그르누이의 후각은 신의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는 인간의 온갖 악취가 들끓는 파리의 어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어머니는 그를 낳고 고기 손질을 계속했고, 울지도 않던 갓난아이는 처음으로 숨을 내쉬며 주변의 역한 냄새를 '정확하게' 인지했다. 세상과의 첫 접촉이 바로 후각이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말도, 사랑도 건네지 않았던 세상은 그르누이에게 '냄새'만을 남겨주었다. 말 대신 냄새로 세상을 인지한 그는 언어가 아닌 향기로 사물을 구분하고 감정을 파악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감각 중에서도 가장 본능적이지만 가장 무시되는 후각이, 그에게는 유일한 생존의 수단이자 삶의 중심이었다.
줄거리 요약: 냄새를 사랑한 남자
파리의 뒷골목에서 자란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스쳐간 처녀의 향기에 매혹된다. 그녀의 향기는 지금껏 경험한 그 어떤 향기보다도 순수하고 강렬했다. 그는 그 향기를 보존하고 싶었고, 그 열망은 살인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소유가 아닌 ‘추출’이 목적이었던 그는, 이후 완벽한 향수를 만들기 위한 살인을 반복하게 된다.
"사랑을 느낄 수는 없지만, 사랑의 향기는 만들 수 있다."
냄새로 읽는 인간: 감정 없는 천재의 집착
그르누이는 결핍의 화신이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공감도, 기쁨도, 두려움도 없다. 오직 냄새만이 그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사랑의 향기는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역설 속에서 그는 향기를 통해 인간을 조종하려 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범죄자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 감각의 비대칭성과 감정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냄새는 우리의 기억과 직결되고, 향수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기억의 감각'을 극단으로 몰아가며,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시각과 청각, 후각을 시각화하다
영화의 미장센은 진한 고딕풍이다. 파리의 골목, 향수 공방, 살인의 현장까지도 치밀하게 재현되며,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가 강렬한 몰입감을 준다. 특히 그르누이가 향기를 맡을 때마다 카메라는 마치 입자처럼 공기 중을 떠다니는 향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해낸다. 마치 관객이 함께 냄새를 맡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음악 또한 이 영화의 숨겨진 주인공이다. 클래식과 고요한 전자음이 뒤섞인 사운드트랙은 장면마다 그르누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뒷받침한다. 잔혹한 장면조차도 시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음악 덕분이다.
넷플릭스에서 다시 만난 향수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볼 가치가 있다. 단순히 ‘향수를 소재로 한 기괴한 영화’가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넷플릭스를 통해 고화질로 리마스터된 영상과 자막으로 다시 감상하면, 과거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디테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또한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사회적 맥락과 감정의 깊이를 갖고 영화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르누이의 고독, 결핍, 그리고 비극적인 해방은 지금 봐야 더 서늘하고 뼈아프다.
명장면 다시 보기: 완벽한 향기의 대가
결말부, 그르누이가 완성한 향수를 들고 광장의 군중 앞에 섰을 때 벌어지는 장면은 전율 그 자체다. 모두가 그 향기에 무릎 꿇고, 경배하며, 서로를 탐한다. 인간의 본능과 군중심리가 농밀하게 드러나는 이 장면은 향기 하나로 절대 권력을 얻은 한 남자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절정은 동시에 가장 깊은 허무의 바닥이다.
그르누이는 결국 스스로 그 향수를 자신에게 뿌리고,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마침내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게 된다.
향기로 읽는 인간, 그리고 나
《향수》는 향기라는 은유를 통해 인간의 욕망, 본능, 정체성을 고찰한다. 다시 보며 생각했다.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나는 타인의 존재를 어떤 감각으로 기억하는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화학적 조합을 초월한 어떤 것인가?
18년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것을 잃은 지금, 이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향기를 남기고 있냐고.
* 본 리뷰는 영화 감상에 기반한 개인적 견해이며, 작품 해석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